외모최적화 받아도 소용없는 이유
컨설팅을 끝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럴듯하게 세팅된 고객을 거울 앞에 세워둘 때, 겉으로는 감탄사를 뱉으면서도 속으로는 씁쓸함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체형의 단점을 가려주는 날렵한 재킷에 쌈뽕한 데님팬츠를 입혀놓으면 겉보기엔 아주 멋들어져 보인다. 실제로 외모최적화를 받고 광대짓을 하지 않아도 마주앉은 여자들의 입꼬리가 관대해졌다는 수강생의 후기도 종종 들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낯설어하며 어색하게 지은 멋쩍은 표정은 온몸으로 외치고 있다.
내가 이런 화려한 옷을 입어도 될까..?
아니나 다를까, 적잖은 돈을 쓰고 돌아간 이들의 상당수는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늘 입던 목 늘어난 티셔츠와 편안한 트레이닝복으로 슬그머니 되돌아간다.
컨설팅이 엉터리였거나 옷이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아니길 바란다)
남이 떠먹여 준 취향은 결코 내 뼈와 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패션이란 단순히 몸뚱이의 결점을 가리는 요령이 아니라, 한 인간의 라이프스타일과 철학이 굳어져 만들어진 침전물 같은거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무엇에 반응하며 흥분하는지, 어떤 공간에서 누구와 호흡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사유 없이, 그저 남이 골라준 비싼 껍데기만 걸치면 다른 사람이 될 거라 믿는 건 얼마나 게으른 망상인가.
내 삶의 맥락이 거세된 옷차림은 가면무도회의 대여 의상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세련된 원단을 몸에 둘러도,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삶의 궤적이 헐겁다면 옷은 사람을 빛내주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 빈약한 알맹이를 폭로하는 잔인한 거울이 되어버린다.
내가 진행하는 외모최적화 수업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도 늘 뼈아프게 느끼는 지점이다.
나를 찾아와 본인에게 어울리는 실루엣과 색감, 인상의 방향성을 세팅받고 나면 당장은 마법 같은 해답을 얻은 양 들뜨겠지만, 사실 그건 내가 그 사람의 고유한 결을 읽어내어 가장 알맞은 지도와 나침반을 손에 쥐여준 것에 불과하다.
그 옷과 분위기가 진짜 내 피부처럼 숨을 쉬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그 사람 자신이 매일의 일상에서 치러내야 할 몫이다.
주말에 신사동 골목이나 한남동 카페거리를 관찰해봐라. 그 동네를 유영하듯 걷는 ‘진짜’ 멋있는 사람들을 보면 단순히 비싼 옷을 걸쳐서가 아니다.
그들의 나른한 걸음걸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 무심한 시선, 삶의 궤적이 묻어나는 태도가 옷과 기괴할 정도로 완벽하게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
수업을 통해 찾아낸 방향성은 완성품이 아니라 비로소 당신이라는 인간을 증명하러 떠나는 출발선이다.
컨설팅이 끝났다고 안도하며 다시 나태한 옛 습관으로 기어 들어가거나 또다시 남의 뒤꽁무니를 쫓는다면, 그 모든 시간과 비용은 그저 일회성 가면놀이에 지나지 않게 된다.
부디 그 단단한 방향(리포트)을 의심하지 말고, 비틀거리더라도 끝까지 스스로 직접 걸어가길 바란다.
flowchart TD
A["방향성(지도와 나침반)을 손에 쥔다"] --> B{그 다음 어떻게 하는가?}
B -->|나태한 옛 습관으로 기어들어가거나 남의 뒤꽁무니를 쫓는다| C["일회성 가면놀이로 끝난다"]
B -->|의심하지 않고 비틀거리더라도 스스로 걸어간다| D["옷과 태도가 한 덩어리로 붙는다"]+ 외모최적화 수강생 추가 모집 예정입니다(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