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떤 남자는 어딜 가도 여자 운이 좋은가? <운의 역설> (90%의 남자가 여자를 만나면서 '실력'이라고 착각하는 것
이 글의 목차
당일 원나잇은 운이다.
다만, 계속 운인 사람이 있고 어느 순간부터 운이 아니게 되는 사람이 있다.
왜 어떤 남자는 몇 년을 여자를 만나러 다녀도 매번 그날그날의 운에 인생이 휘둘리고, 어떤 남자는 어디를 가도 이상할 정도로 계속 좋은 일이 생기는가.
이 차이를 이해하면 당일 원나잇뿐만 아니라 연애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원나잇을 잘한다는 말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릴 거라고 장담한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의 남자가 아주 멍청한 결론을 하나 내린다.
그러면 결국 '복불복 운빨게임' 아니냐고.
그러니까 밤게임을 몇 년씩 해놓고도 제자리걸음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 장담하는데 오래했는데도 매번 결과 하나에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한다면 아직 게임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칼럼을 끝까지 읽으면 당신이 얻게 될 것
- '운'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안 해온 나를 발견하게 된다.
- 통제할 수 없는 운과,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확률을 구분하는 눈이 생긴다.
- 반복되는 운을 실력으로 바꾸는 방법, '운의 역설'을 알게 된다.
원나잇은 운이다
나는 이 말을 부정할 생각이 없다.
오늘 만난 여자가 원래 새로운 만남에 열려 있는 사람인지,
최근에 마침 남자친구와 헤어진 상태인지,
그날따라 기분이 좋은지,
내 외모와 분위기가 정확하게 자기 취향인지,
다음 날 중요한 일정이 없는지,
같이 온 친구가 갑자기 집에 가자고 하지는 않는지.
이런 것까지 통제할 방법은 없다. 그러니 오늘 당일 원나잇이 나오느냐만 잘라서 보면, 운이 맞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게임을 오래 할수록 '운이 좋은 남자'와 '운이 나쁜 남자'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덜 하게 됐다. 오히려 완전히 다른 것이 보였다.
똑같이 좋은 기회가 와도
어떤 남자는 그 기회가 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가고,
어떤 남자는 알아보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어떤 남자는 움직이지만 잡아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어떤 남자는 너무 자연스럽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
재미있는 건, 이 네 사람에게 실제로 찾아온 행운의 양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차이는 전혀 다른 곳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오늘은 '운이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왜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운으로 남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어느 순간부터 실력이 되는가.
이 차이를 이해하면 아마 '당일 원나잇을 잘 친다'라는 말의 의미부터 조금 달라질 것이다.
한 번의 당일 원나잇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는다
밤게임을 처음 시작한 남자가 첫날 바로 원나잇을 하는 경우가 있다. 두 번째에도 손쉽게 하게 됐다. 심지어 세 번째까지 이상할 정도로 쉽게 풀린다.
여자가 먼저 적극적이기도 하고, 반응도 잘 나오고,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잡혔고 흐름도 좋고, 자기가 특별한 걸 한 기억도 없는데 모든 게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면 머릿속에 아주 위험한 생각이 하나 생긴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아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좋은 패를 처음부터 받은 사람이 자기가 포커를 잘 친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다.
그런데 인간은 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원인을 붙이고 싶어 한다. 원나잇을 성공했으니 아까 친 멘트가 좋았던 것 같고, 기세있게 밀어붙인 게 먹힌 것 같고, 내 프레임이 강했던 것 같고, 결국 오늘 내가 게임을 잘했던 것 같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결과를 보고 역으로 과정의 질까지 판단해버리는 오류를 결과편향이라고 한다. 오늘 섹스를 하면 좋은 게임이었고, 나쁜 결과가 나왔으니 나쁜 게임이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과정이 아니라 최종 결과 하나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이고, 표본이 적을수록 이 오류는 더 크게 작동한다. 한두 번의 결과에는 운이 미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여자와의 게임에서 이 오류가 특히 위험한 이유가 있다. 운이 실력보다 먼저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은 실력을 만드는 대신 자기 행운을 복제하기 시작한다.
실력 없이 결과를 먼저 얻은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잘했는지도 모르면서 결과가 나온 행동만 반복한다.
"저번에 이 말 했더니 됐는데."
다시 한다. 안 된다.
"조금 더 세게 했던 것 같은데."
더 세게 한다. 또 안 된다.
"저번에는 두 번 거절당하고 세 번째에 됐는데."
한 번 더 한다. 또 안 된다.
그리고 결국 이런 말을 한다.
"이상하다. 저번에는 됐는데?"
당연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을 배우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여자랑 좋은 시간을 보내고 상호작용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마음으로 자신한테 왔던 행운을 재연하고 싶어서 애쓰는 사람이 된다. 그런 부분에서 니디해지고 여자에게 바이브로 전달된다.
본인이 잘해서 된 게 아니었는데. 사실 내가 뭘 해서 된 게 아니라, 여자가 그걸 속아넘어가주고 싶게 판을 깔아주고 여자 스스로가 합리화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게 마음을 사는 거고 좋은 게임의 지표가 된다.
이게 초심자의 행운이 무서운 이유다. 실력보다 성공을 먼저 경험하면 사람은 성공의 원인을 잘못 배운다.
반대로 실패에는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실패는 질문을 남긴다.
왜 여기서 분위기가 바뀌었지.
왜 나는 갑자기 말을 많이 하기 시작했지.
저 여자에게 정말 한 시간을 더 쓸 이유가 있었나.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내가 놓친 건가.
내가 이 여자를 보고 있었나, 아니면 오늘 반드시 결과를 내야 한다는 내 욕심을 보고 있었나.
이 질문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감'이라는 게 이거다.
감은 생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너무 많은 생각이 압축돼서 더 이상 생각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는 상태다.
그래서 나는 잘하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무슨 멘트를 치는지부터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
누구에게 시간을 쓰는지.
누구에게는 왜 아예 시간을 쓰지 않는지.
어느 순간 앞으로 들어가는지.
어느 순간 미련 없이 일어나는지.
무엇을 보고 판단을 바꿨는지.
고수에게서 훔쳐야 할 것은 말이 아니라 판단 기준이다.
멘트는 결과물이고, 판단 기준이 생산설비다. 생산설비를 못 본 사람이 완제품 하나만 들고 와서 복제하려고 하는 게 대부분의 루틴 암기다.
당신은 운이 없는 게 아니라, 운을 회수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운이라는 걸 조금 더 세분화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은 이렇게 생각한다. 운이 왔다, 운이 안 왔다. 둘 중 하나다.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 기회가 생긴다
- 내가 그 기회와 마주친다
- 그게 기회라는 걸 알아본다
- 움직인다
- 그리고 실제 결과로 만든다
기회가 발생한 것과 그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든 것은 전혀 다른 사건이다. 나는 그 차이를 운의 회수율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길에서 정말 자기 취향인 여자가 지나간다. 이미 운은 발생했다. 그런데 핸드폰만 보고 있다가 지나쳤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에 드는 걸 알아봤다. 그런데 친구 옆이라 쪽팔려서 안 갔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행동하지 않은 것이다.
말까지 걸었다. 그런데 표본이 부족해서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하나도 읽지 못한다. 운이 없었던 게 아니다. 회수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집에 돌아가서 똑같이 말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여자 운이 없었다."
아니다. 기회가 없었던 것과 기회를 현금화할 시스템이 없었던 것은 완전히 다르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평생 세상을 탓하게 된다.
내 주변에도 이상할 정도로 기회가 많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사업을 해도 그렇고, 사람을 만나도 그렇고, 여자를 만나도 그렇다. 겉에서 보면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조금 다르다. 다른 사람보다 기회가 많이 떨어지는 게 아니다.
남들이 기회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기회로 보고,
남들이 고민하는 동안 먼저 움직이고,
남들이 한 번 실패하고 접을 때 데이터를 얻어서 다시 움직인다.
그러니까 당연히 회수하는 운의 개수가 많아진다.
이를 단순히 "많이 들이대라."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된다. 그건 너무 낮은 차원의 해석이다. 핵심은 시도의 개수가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피드백을 받아낼 수 있느냐다.
같은 곳에서, 같은 수준의 여자에게, 같은 방식으로, 같은 실수를 100번 반복하면 100개의 경험을 한 게 아니다. 사실상 같은 경험 하나를 100번 복사한 것에 가깝다.
반대로 새로운 수준의 사람을 만나고, 다른 상황을 겪고, 틀렸던 판단을 수정하고, 어제 안 보였던 신호를 오늘 하나 더 볼 수 있게 됐다면 한 번의 만남에서도 표본은 늘어난다.
그래서 실전의 목적은 단순히 횟수를 채우는 데 있지 않다. 자기가 보고 있는 세계의 해상도를 계속 높이는 데 있다. 그런 경험이 쌓일수록 상황을 읽는 정교함, 인식의 깊이, 관찰의 밀도, 판별력, 판단의 정밀도가 높아질 것이다.
성공은 자산이 되기도 하지만, 부채가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보통 실패가 사람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성공도 사람을 망치는 걸 많이 봤다. 특히 그 성공이 자기 실력보다 먼저 찾아왔을 때 그렇다. 나는 이것을 성과부채라고 부른다.
지난달에 당일 원나잇을 열 번 했다.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번 달에는 세 번밖에 안 됐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이상해진다.
실제로는 아무 문제도 없을 수 있다. 이번 달에 만난 여성들의 수준이 훨씬 높았을 수도 있고, 실전 횟수가 적었을 수도 있고, 상황 자체가 달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머릿속에서는 숫자 하나만 남는다.
10 → 3.
"나 퇴화했나?"
그 순간 지난달의 성공이 이번 달에 갚아야 할 빚이 된다.
오늘도 하나 해야 한다.
이번 주에도 하나 해야 한다.
지난달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잘하는 남자라는 걸 나 자신에게 다시 증명해야 한다.
이때부터 남자는 여자를 만나는 게 아니라 자기 과거 기록을 방어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성과부채가 생긴 사람은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합리적이 된다.
처음에는 자기 이상형에게 간다. 안 된다. 오늘 하나는 해야 한다. 기준을 조금 낮춘다. 또 안 된다. 조금 더 낮춘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본인이 그다지 끌리지도 않는 여자와 잠자리를 갖고 돌아와서 말한다.
"그래도 오늘 성공."
무엇에 성공했을까? 내가 원하는 여자를 얻은 게 아니지 않나? 오늘 목표 숫자를 맞추는 데 성공한 것이다. 목적과 측정지표가 뒤집혔다.
사업도 똑같다. 원래는 좋은 사업을 해서 돈을 벌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고서에 찍히는 숫자를 맞추는 게 목적이 된다. 그러면 직원은 KPI를 달성한다. 회사는 망한다. 숫자는 좋아졌다. 본질은 나빠졌다.
게임에서도 똑같다. 원래 목표는 내가 정말 원하는 여자를 만났을 때 그 여자에게도 강한 이끌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남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당일 원나잇 개수를 세고 있다. 이때부터 게임을 잘하는 게 아니라 게임의 측정지표를 해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단순한 당일런 횟수를 실력의 핵심지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일당 10만 원짜리 일감을 100개 받은 사람이 200억짜리 프로젝트 하나를 따낸 사람보다 계약을 100배 잘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다. 내가 원하지도 않는 여자 100명에게 선택받는 것과, 내가 정말 원하는 여자 한 명에게 강한 이끌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낮은 지표에 중독될수록 높은 목표에는 점점 도달하기 어려워진다. 왜냐하면 사람은 측정하는 것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당일런 횟수를 측정하면 당일런 횟수에 최적화된 사람이 된다. 좋은 여자를 감당할 자신의 그릇을 측정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하수는 확률을 소비하고, 고수는 확률을 축적한다
여기서 나는 게임에서 얻는 것을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한다. 확률소비와 확률자산.
오늘 우연히 먹힌 멘트.
오늘 그 여자에게만 유난히 잘 맞았던 캐릭터.
특정 술자리의 분위기.
상대가 그날 가지고 있었던 특별한 결핍.
이런 건 결과를 만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게임이 끝나면 대부분 같이 사라진다. 오늘 확률을 한 번 소비한 것이다.
반대로,
- 몸을 만들어놓은 것
- 스타일을 만든 것
- 좋은 목소리를 만든 것
- 상대가 보내는 신호를 읽는 능력
- 어떤 여자에게 시간을 써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
- 내가 궁핍해지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
- 안 되는 관계를 빨리 놓는 능력
- 좋은 인간관계, 좋은 소셜
- 거절당한 뒤에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회복력
- 실패한 만남을 복기하는 습관
이것들은 오늘 한 사람에게만 쓰이지 않는다. 다음 사람에게도 남고, 1년 뒤에도 남고, 어떤 것은 10년 뒤에도 남는다. 나는 이런 걸 확률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수는 게임을 앞두고 묻는다.
"오늘 뭘 해야 되지?" "무슨 말을 해야 되지?"
고수는 게임이 끝난 뒤 묻는다.
"오늘이 끝난 뒤에도 내게 남는 게 뭐지?"
둘의 격차는 하루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3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인간이 된다.
한 사람은 멘트 100개를 가지고 있고, 한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은 특정 상황에서 잘하고, 한 사람은 상황이 바뀌어도 판단할 수 있다.
한 사람은 운이 좋은 날에만 결과를 만들고, 한 사람은 운이 조금 나빠도 게임을 굴린다.
그리고 여기서 확률자산을 단순한 덧셈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외모 하나가 10을 올리고, 몸이 5를 올리고, 비언어가 3을 올리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한 변수가 무너졌을 때 다른 자산이 그 손실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다.
경험이 없는 남자는 한 가지가 망가지면 게임 전체가 무너진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 아무것도 못 한다. 첫 반응이 좋지 않다. 당황한다. 상대가 예상과 다른 말을 한다. 외웠던 흐름이 전부 깨진다.
반대로 고수들은 조금 다르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사람을 보는 눈이 있다. 외모가 상대 취향에 정확히 꽂히지 않아도 비언어가 살아있다. 첫 반응이 안 좋아도 그게 진짜 거절인지 상황상의 반응인지 판단할 수 있다. 대화가 꼬여도 특정 멘트에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그러니까 실력은 하나의 능력을 압도적으로 만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실력이란 성공확률 하나를 높이는 게 아니라 실패할 이유를 하나씩 제거해가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잘 맞아야 된다. 외모도 취향이어야 하고, 상대 컨디션도 좋아야 하고, 내 컨디션도 좋아야 하고, 상황도 좋아야 한다. 하나만 틀어져도 끝난다.
그런데 확률자산이 쌓이면 필요한 행운의 개수가 줄어든다. 이 단어가 중요하다. 실력이 올라간다고 운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결과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운의 개수가 줄어든다. 이게 실력이다.
51 대 49가 몇 년 쌓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운이라고 부른다
게임 한 판에서 51과 49는 별 차이가 없다. 49가 이길 수도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같은 우위를 계속 반복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타일에서 조금.
목소리에서 조금.
몸에서 조금.
사람 보는 눈에서 조금.
판단속도에서 조금.
감정통제에서 조금.
좋은 소셜에서 조금.
실패했을 때 복기하는 능력에서 조금.
하나하나는 그 사람을 압도적으로 바꿀 만큼 대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작은 우위들이 5년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이상한 사람이 된다. 특별한 멘트를 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압도적으로 잘생긴 것도 아니다. 무슨 마법 같은 기술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디를 가도 잘된다.
왜? 큰 한 방이 있어서가 아니라 질 이유가 너무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밖에서 그 과정을 못 본 사람은 그 결과에 가장 간단한 이름을 붙인다.
"쟤는 여자 운이 좋잖아."
결과만 보면 맞는 말이다. 과정을 보면 틀린 말이다.
사람은 선택지가 사라지는 순간 싸진다
그런데 확률자산이 아무리 많은 사람도 굉장히 쉽게 무너지는 조건이 하나 있다.
"이 사람밖에 없다."라는 생각이다.
여자가 정말 마음에 든다. 이런 여자는 다시 못 만날 것 같다. 오늘 놓치면 끝날 것 같다. 그 순간부터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 나온다.
조금 더 기다린다.
조금 더 설명한다.
조금 더 받아준다.
조금 더 연락한다.
평소보다 기준을 하나씩 내린다.
우리는 이걸 흔히 "너무 좋아해서 그랬다."라고 설명한다. 나는 조금 다르게 보는데, 상대가 특별해서 행동이 바뀐 게 아니라 내 선택권이 사라졌다고 믿었기 때문에 내 행동의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나는 이걸 선택권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물건도 오늘 반드시 팔아야 하는 사람과 안 팔려도 되는 사람의 가격은 달라진다. 똑같은 사람도 이 계약 하나가 반드시 필요한 영업사원과 아니면 다음 고객을 만나면 되는 사람의 협상력은 다르다.
관계도 같다. 선택권이 없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할인한다.
그리고 여기서 선택권을 "여자를 여러 명 만들어놔라." 정도로 이해하면 본질을 못 본 것이다. 선택권은 여자 숫자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내 일이 있다.
운동이 있다.
좋은 친구들이 있다.
가족이 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게 있다.
내가 만들어내고 싶은 게 있다.
여자가 없어도 계속 굴러가는 하루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선택권이다.
삶이 텅 빈 남자에게 괜찮은 여자 하나가 나타나면 그 여자가 삶의 80%가 된다. 삶이 이미 꽉 찬 남자에게 똑같은 여자가 나타나면 굉장히 중요한 10%가 될 수 있다. 둘이 같은 말을 한다고 해서 같은 분위기가 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쉬움 없는 남자'를 흉내 내는 기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답장을 일부러 늦게 한다.
여자 많은 척한다.
질투를 유발한다.
관심 없는 척한다.
이건 선택권이 아니다. 선택권이 없는 사람이 선택권 있는 사람의 행동만 복사한 것이다. 내면은 그대로인데 외부 표현만 가져오면 압력이 있는 상황을 겪게 되면 바로 멘탈이 나간다.
진짜 여유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나오지 않는다. 삶의 포트폴리오에서 나온다. 한 곳에 모든 가치를 몰빵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흔들려도 내 인생 전체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아쉬움 없음은 차가운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할 때 제대로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기반이다. 잃는 것이 두려워서 상대를 붙잡는 것과 원하기 때문에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완전히 다른 행동이다.
운 좋은 남자에게는 자기만의 '운행표'가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래서 뭘 해야 되냐."라는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나는 거창한 답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가 계속 좋아지는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시시한 공통점이 하나 있다. 자기만의 운행표가 있다.
- 운동한다
- 일한다
- 관리한다
- 사람을 만난다
- 새로운 걸 배운다
- 실전한다
- 복기한다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계속 반복한다. 특별한 날만 하는 게 아니다. 기분 좋을 때만 하는 것도 아니다.
지하철은 오늘 자신감이 없다고 운행을 취소하지 않는다. 버스는 어제 승객에게 욕먹었다고 다음 날 출발하지 않는 게 아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움직인다.
나는 사람이 자기 삶을 운전한다는 것도 결국 이런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여자 반응이 좋으니 운동하고,
연락이 끊겼으니 사흘간 누워 있고,
요즘 게임이 잘되니 사람을 만나고,
한 번 크게 까였으니 한 달을 쉬고.
이렇게 살면 내 삶의 운전대를 계속 외부 사건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할 일을 내가 정하고, 좋은 날에도 하고, 안 좋은 날에도 한다. 그러면 적어도 좋은 기회가 왔는데 내가 자리에 없는 날은 줄어든다.
운행표의 목적은 매일 좋은 결과를 만드는 데 있지 않다.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준비되지 않은 사람일 확률을 줄이는 데 있다. 이것 역시 확률자산이다.
그런데 가장 높은 단계에 가면, 런 자체가 KPI에서 사라진다
여기까지 오면 조금 이상한 문제가 하나 남는다. 왜 남자는 당일 원나잇 하나에 그렇게까지 집착할까? 정말 섹스가 좋아서일까? 물론 그것도 있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그 아래에 다른 질문이 하나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남자인가?"
그래서 결과가 나오면 나도 되는구나. 안 나오면 역시 나는 안 되는구나. 한 번의 원나잇이 자기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된다. 그러니 계속 다음 증명서가 필요하다.
지난달에 됐어도 이번 달에 다시 증명해야 한다. 어제 됐어도 오늘 안 되면 불안하다. 성과부채가 계속 쌓인다. 결국 여자를 즐기는 게 아니라 여자로 자기 가치의 재무제표를 작성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이 끝을 어느 정도 봤다. 처음에는 예쁜 여자와 잠자리를 갖는다는 게 엄청난 보상이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한다. 몇 번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더 높은 자극이 필요해진다.
예쁜 여자. 더 예쁜 여자. 더 어려운 여자. 더 희귀한 여자.
그런데 이 게임에는 마지막 스테이지가 없다. 계속 위가 있다. 이 구조에서 못 빠져나오면 자유를 얻으려고 시작한 게임 때문에 오히려 결과 없이는 불안한 사람이 된다. 그건 자유가 아니다. 새로운 결핍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당일 원나잇의 목표에서 내려와야 한다. 못해서 내려놓는 것과는 다르다. 할 수 있지만 더 이상 그것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만난다. 끌리면 표현한다. 서로 원하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그 결과 하나가 오늘 내가 성공한 남자인지 실패한 남자인지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여자는 목표가 아니라 트리거가 된다.
내 부족함을 보게 만드는 트리거.
내가 가진 수준을 확인하게 만드는 트리거.
조금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드는 트리거.
내 삶에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주는 트리거.
이 단계로 내려오면 재미있는 일이 생긴다. 결과를 덜 필요로 하는데 오히려 결과를 만들기 쉬워진다.
왜냐하면 이제 숫자를 맞추기 위해 기준을 낮출 이유가 없고, 한 사람에게 모든 선택권을 넘길 이유도 없고, 실패했다고 내 존재까지 흔들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원나잇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남자보다 원나잇을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 남자가 원나잇을 만들기 훨씬 좋은 상태에 놓인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운의 역설이다.
결국 오늘 원나잇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운이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 운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다른 것이다.
나는 운이 왔을 때 그게 운인지 알아볼 수 있는가.
알아봤을 때 움직일 수 있는가.
움직였을 때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확률자산이 있는가.
그리고 오늘 놓쳤다고 해서 내 기준까지 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이 네 가지가 쌓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예전에는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야 가능했던 일이 어느 순간부터는 몇 가지 조건이 틀어져도 일어난다.
사람들은 그때부터 당신을 운 좋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운이 좋아진 게 아니다. 운에 맡겨야 할 영역이 줄어든 것이다.
한 번의 행운은 사건이다. 반복되는 행운은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자기 손으로 만드는 능력을 나는 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원나잇은 운이다.
다만 평생 계속 운이어야만 하는 사람이 있고,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운에만 맡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